한 줄 평 : "원작을 벗어나지 못한 논리와 비논리, 그리고 사랑이야기"
우연히 보게 된 <용의자 X의 헌신>(이하 <용의자 X>)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제작자들 입장에서는 원작에 충실하는 쪽으로 조금 더 비중을 두어 만든 것 같습니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살해했고, 그녀를 너무 사랑해 죄를 숨겨주겠다고 나선 천재 수학자와, 그 비밀을 밝혀내려는 천재물리학자의 대결(이라고는 하지만 실상 뻥튀기된 면도 없지않아 있습니다.광고멘트가 다 그렇죠 뭐.)'이라는 구도는 소설과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잘 뽑아낸 면에 국물과 고명만 적절히 배합해서 내놓은 '잔치국수'와도 같은 구성이에요.
필자가 이전에 접했던 영화 때문이었을까요. <불량공주 모모코>, <워터보이즈>, <스윙걸스>와 같은 참신한 소재도 아니었고, 만화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일본영화 특유의 풍미가 느껴지는 희극적 요소 및 연출 또한 최소한으로 절제되어 있었습니다. '무거운 주제를 진지하게' 풀어 써간 그들의 정공법이 영화에서 제 역할을 하는 듯 합니다. [현대적이다 못해 건조하며 삭막했던 분위기와 장면 연출에 살짝 압도되는 느낌도 있지만요.]
<용의자 X>는 하나의 스토리를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추리영화를 보는 관객의 관점으로, 다른 하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인 '용의자 X'를 관찰하는 관점으로 말이죠. 필자의 개인적인 심정으로는 <용의자 X>는 추리/범죄 영화로서는 부족한 점이 다소 있어 보였습니다. 영화 안에서 관객들로 하여금 그 나름의 결말을 추리하기 위한 단서는 이것저것 던져줍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추리하는 데 작용할 수 있는 Key Point는 철저히 감춰두었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중의적 의미를 가질 수도 있는 단서를 의도적으로 노출시켰지만, 이를 규명해나가는 과정이 충분치 않았다고 하는게 알맞을지도 모르겠군요. 이를 두고 혹자를 허를 찌르는 기발한 반전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절대 필자가 이 영화를 보며 추리한 바와 틀려서 이러는게 아닙니다.[?!]]
또한, 영화 중반 이후 스토리 내부에 다소 불필요한 요소가 삽입된 것 또한 아쉬운 부분입니다. 주인공 두 명이 갑자기 등산을 가게 되는 설정과, 주인공이 짝사랑하는 여자와 그 내연남의 관계 설정에서 필자는 조금 멍해졌습니다. 이 둘은 전체적인 스토리 전개에 있어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춰야하는 소설에서는 필수불가결한 장치일 수도 있으나, 추리영화로서의 몰입엔 도움이 되지 않는 부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긴장감 속에 숨죽이며 추리과정을 지켜보던 관객에게 찬물을 끼얹는 격이랄까요...(이 부분은 '원작대로' 만든 제작자들의 맹점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네요.)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추리'하는 입장에서 영화를 바라봤을 때입니다. 만약 <용의자 X>의 주인공을 관찰해 나가는 관점에서 이 영화를 바라보게 된다면, 저는 아까와는 다른 이야기를 해 나가고 싶습니다. 자신이 짝사랑하는 여인의 범죄를 숨겨주고자 하는 수학자의 헌신은 처절한 동시에 놀라울 정도로 논리적입니다.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장치들과 그 과정에서 생긴 여러 모순들을 수정하고자 만들어 낸 또다른 트릭들, 이 모든 것들이 유기적으로 서로를 뒷받침 해주며 하나의 수학적인 알고리즘(순서도)을 형성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자기 자신을 희생양으로 던져가면서까지 헌신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소설을 본 적 없이 이 영화를 본 필자는 마지막까지도 그의 시나리오대로 스토리가 척척 진행될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도 '계산적'이었던 그의 헌신이 물거품이 되었던 것은 그가 '헌신'에 포함되어있던 비논리적인 요소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애초에 그녀를 향한 그의 '헌신'의 동기는 다름아닌 '사랑'입니다. 어떠한 논리도 대전제가 '거짓'일 경우, 결과가 참이 될 수 없듯, 동기가 논리적이지 못했던 그의 헌신은 첫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것 같았습니다.
더군다나 그의 논리적으로 도출하고자 했던 답 또한 비논리적인 요소입니다. 가설을 설정하고 실험을 통해 검증해 나가는 '물리학'적인 접근도,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그려가며 모든 과적을 계산해 나가는 '수학'적인 접근도 그가 사랑하는 대상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 될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헌신을 통해 구하고자 했던 답인 '대상'은 '논리성'과 '비논리성'이 혼재된 '모순'된 존재, 바로 사람이었으니까요.
<용의자 X>에서 주인공은 아마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을 겁니다. 왜 짝사랑한 그녀가 자신이 만들어 준 '해피 엔딩'을 거부하고 자기를 배신했는지. 마지막에 주인공이 목놓아 울던 모습은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없었던 진실된 추리'앞에 그가 굴복했다기 보다, 자신이 논리적이라고 자부했던 '헌신'을 통해 도출된 답이 결국은 '아름답지 못한' 모순이라는 사실에 대한 자기분노, 내지는 자기혐오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닌가 싶어서 씁쓸했습니다. (물론 단순히 사랑한 대상이 행복해지지 못한 것 때문에 가슴아파서 울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순전히 그렇게 보이진 않았어요.)
'나는 어디까지 내 사랑에 헌신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 물리학과 수학의 관점차이, 이름 모를 미남배우의 열연[?!] 등 영화 자체로서는 썩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소설원작 영화가 공통적으로 갖는 한계점을 이 영화 또한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원작의 아성을 뛰어넘기 힘들다'는 점이에요.
최근에 나온 드라마, 영화를 보면 만화 내지는 소설 원작의 작품들이 눈에 띕니다. One-source, Multi-use1가 대세...랄까요? 국내에만 해도 <공부의 신>, <커피프린스 1호점>, <앤티크-서양골동양과자점> 등이 있군요. 이러한 작품들을 만들면서 제작자들은 '두 마리 토끼'를 두고 갈등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하나는 '원작에 얼마나 충실하였는가?'하는 것, 다른 하나는 '원작의 틀을 얼마나 깨뜨렸는가?'하는 것.
만일 전자에 치우친다면 Plot이 단순해집니다. Plot의 짜임새는 영화의 흥행성과 어느 정도 직결되는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소설처럼 특정 인물 내지는 서술자 시점을 기준으로 쓰여진 Text가 아니라, 스토리에 존재하는 전반적인 것들을 다각적으로 분석하여 보여주는 Scene들의 연속입니다. 따라서 평면적인 구성은 관객들로 하여금 지루함을 유발시킬 수 있지요. 때문에 스토리를 각색하여 원작과는 판이한 줄거리를 갖는 작품들 또한 더러 있습니다.
그런다고 후자에만 비중을 둘 수는 없는 노릇일 겁니다. 영화와 원작 사이의 연결고리를 잘라낸다는 것은, 특히 원작이 유명했던 경우라면, 영화 제작자들의 입장에 있어서 굉장한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영화를 보러오는 관객들 중 원작의 명성에 힘입어(?) 관람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원작만큼의 재미를 기대하고 온 사람들에게 영확가 얼마나 그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수 없어요.
<용의자 X>의 경우엔 제작자들이 원작에 충실하여 영화를 만들어 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영화로서의 스토리라인이 다소 지저분했고, Plot이 단순했던 건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원작을 접했던 분들에게는 크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요소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을 것 같군요.
내멋대로 별점 : ★★☆☆☆ // 한번 쯤은 볼만해요.
우연히 보게 된 <용의자 X의 헌신>(이하 <용의자 X>)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제작자들 입장에서는 원작에 충실하는 쪽으로 조금 더 비중을 두어 만든 것 같습니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살해했고, 그녀를 너무 사랑해 죄를 숨겨주겠다고 나선 천재 수학자와, 그 비밀을 밝혀내려는 천재물리학자의 대결(이라고는 하지만 실상 뻥튀기된 면도 없지않아 있습니다.
필자가 이전에 접했던 영화 때문이었을까요. <불량공주 모모코>, <워터보이즈>, <스윙걸스>와 같은 참신한 소재도 아니었고, 만화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일본영화 특유의 풍미가 느껴지는 희극적 요소 및 연출 또한 최소한으로 절제되어 있었습니다. '무거운 주제를 진지하게' 풀어 써간 그들의 정공법이 영화에서 제 역할을 하는 듯 합니다. [현대적이다 못해 건조하며 삭막했던 분위기와 장면 연출에 살짝 압도되는 느낌도 있지만요.]
<용의자 X>는 하나의 스토리를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추리영화를 보는 관객의 관점으로, 다른 하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인 '용의자 X'를 관찰하는 관점으로 말이죠. 필자의 개인적인 심정으로는 <용의자 X>는 추리/범죄 영화로서는 부족한 점이 다소 있어 보였습니다. 영화 안에서 관객들로 하여금 그 나름의 결말을 추리하기 위한 단서는 이것저것 던져줍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추리하는 데 작용할 수 있는 Key Point는 철저히 감춰두었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중의적 의미를 가질 수도 있는 단서를 의도적으로 노출시켰지만, 이를 규명해나가는 과정이 충분치 않았다고 하는게 알맞을지도 모르겠군요. 이를 두고 혹자를 허를 찌르는 기발한 반전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절대 필자가 이 영화를 보며 추리한 바와 틀려서 이러는게 아닙니다.[?!]]
또한, 영화 중반 이후 스토리 내부에 다소 불필요한 요소가 삽입된 것 또한 아쉬운 부분입니다. 주인공 두 명이 갑자기 등산을 가게 되는 설정과, 주인공이 짝사랑하는 여자와 그 내연남의 관계 설정에서 필자는 조금 멍해졌습니다. 이 둘은 전체적인 스토리 전개에 있어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춰야하는 소설에서는 필수불가결한 장치일 수도 있으나, 추리영화로서의 몰입엔 도움이 되지 않는 부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긴장감 속에 숨죽이며 추리과정을 지켜보던 관객에게 찬물을 끼얹는 격이랄까요...(이 부분은 '원작대로' 만든 제작자들의 맹점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네요.)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추리'하는 입장에서 영화를 바라봤을 때입니다. 만약 <용의자 X>의 주인공을 관찰해 나가는 관점에서 이 영화를 바라보게 된다면, 저는 아까와는 다른 이야기를 해 나가고 싶습니다. 자신이 짝사랑하는 여인의 범죄를 숨겨주고자 하는 수학자의 헌신은 처절한 동시에 놀라울 정도로 논리적입니다.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장치들과 그 과정에서 생긴 여러 모순들을 수정하고자 만들어 낸 또다른 트릭들, 이 모든 것들이 유기적으로 서로를 뒷받침 해주며 하나의 수학적인 알고리즘(순서도)을 형성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자기 자신을 희생양으로 던져가면서까지 헌신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소설을 본 적 없이 이 영화를 본 필자는 마지막까지도 그의 시나리오대로 스토리가 척척 진행될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도 '계산적'이었던 그의 헌신이 물거품이 되었던 것은 그가 '헌신'에 포함되어있던 비논리적인 요소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애초에 그녀를 향한 그의 '헌신'의 동기는 다름아닌 '사랑'입니다. 어떠한 논리도 대전제가 '거짓'일 경우, 결과가 참이 될 수 없듯, 동기가 논리적이지 못했던 그의 헌신은 첫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것 같았습니다.
더군다나 그의 논리적으로 도출하고자 했던 답 또한 비논리적인 요소입니다. 가설을 설정하고 실험을 통해 검증해 나가는 '물리학'적인 접근도,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그려가며 모든 과적을 계산해 나가는 '수학'적인 접근도 그가 사랑하는 대상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 될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헌신을 통해 구하고자 했던 답인 '대상'은 '논리성'과 '비논리성'이 혼재된 '모순'된 존재, 바로 사람이었으니까요.
<용의자 X>에서 주인공은 아마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을 겁니다. 왜 짝사랑한 그녀가 자신이 만들어 준 '해피 엔딩'을 거부하고 자기를 배신했는지. 마지막에 주인공이 목놓아 울던 모습은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없었던 진실된 추리'앞에 그가 굴복했다기 보다, 자신이 논리적이라고 자부했던 '헌신'을 통해 도출된 답이 결국은 '아름답지 못한' 모순이라는 사실에 대한 자기분노, 내지는 자기혐오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닌가 싶어서 씁쓸했습니다. (물론 단순히 사랑한 대상이 행복해지지 못한 것 때문에 가슴아파서 울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순전히 그렇게 보이진 않았어요.)
'나는 어디까지 내 사랑에 헌신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 물리학과 수학의 관점차이, 이름 모를 미남배우의 열연[?!] 등 영화 자체로서는 썩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소설원작 영화가 공통적으로 갖는 한계점을 이 영화 또한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원작의 아성을 뛰어넘기 힘들다'는 점이에요.
최근에 나온 드라마, 영화를 보면 만화 내지는 소설 원작의 작품들이 눈에 띕니다. One-source, Multi-use1가 대세...랄까요? 국내에만 해도 <공부의 신>, <커피프린스 1호점>, <앤티크-서양골동양과자점> 등이 있군요. 이러한 작품들을 만들면서 제작자들은 '두 마리 토끼'를 두고 갈등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하나는 '원작에 얼마나 충실하였는가?'하는 것, 다른 하나는 '원작의 틀을 얼마나 깨뜨렸는가?'하는 것.
만일 전자에 치우친다면 Plot이 단순해집니다. Plot의 짜임새는 영화의 흥행성과 어느 정도 직결되는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소설처럼 특정 인물 내지는 서술자 시점을 기준으로 쓰여진 Text가 아니라, 스토리에 존재하는 전반적인 것들을 다각적으로 분석하여 보여주는 Scene들의 연속입니다. 따라서 평면적인 구성은 관객들로 하여금 지루함을 유발시킬 수 있지요. 때문에 스토리를 각색하여 원작과는 판이한 줄거리를 갖는 작품들 또한 더러 있습니다.
그런다고 후자에만 비중을 둘 수는 없는 노릇일 겁니다. 영화와 원작 사이의 연결고리를 잘라낸다는 것은, 특히 원작이 유명했던 경우라면, 영화 제작자들의 입장에 있어서 굉장한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영화를 보러오는 관객들 중 원작의 명성에 힘입어(?) 관람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원작만큼의 재미를 기대하고 온 사람들에게 영확가 얼마나 그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수 없어요.
<용의자 X>의 경우엔 제작자들이 원작에 충실하여 영화를 만들어 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영화로서의 스토리라인이 다소 지저분했고, Plot이 단순했던 건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원작을 접했던 분들에게는 크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요소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을 것 같군요.
내멋대로 별점 : ★★☆☆☆ // 한번 쯤은 볼만해요.
- 하나의 부가가치를 다양한 방법을 통해 서로 다른 장르에 적용하여 파급효과를 노리는 마케팅 전략 중 하나입니다. 만화캐릭터를 토대로 만든 캐릭터상품이 좋은 예입니다. -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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